어릴 때 겨울은 무척 추웠습니다. 외투나 오바를 입은 아이보다 나이론 잠바(안에는 얇은 스펀지)만 있어도 그 해 겨울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습니다. 3km 정도 되는 학교를 걸어다니면 발이 시려워서 종종 걸음으로 갑니다. 원효로 용문 시장을 지나갈 때면 상인들이 길에 장작불을 지펴서 몸을 녹이고 있습니다. 그 따뜻한 불이 시린발이라도 녹이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지각하지 않으려고 모른 척하고 지나칩니다. 교실에 들어가면 차가운 냉기가 코끝을 떠나지 않다가 1교시가 지나면 석탄 난로불이 데워져 추위가 조금 가셨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 아랫목에 있는 이불 속에 언 손을 넣고 발을 넣으면 따뜻한 열기가 온몸을 녹여줍니다. 그 당시 어느 집이나 난방은 온돌이었습니다.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열기가 방바닥의 온돌(구들-구운돌) 아래에 있는 고래(열과 연기가 이동하는 통로)를 데우고 연기는 굴뚝을 통해 나갔습니다. 시골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하고 불씨를 모아 화로에 담아 방안의 공기를 데우곤 하였습니다.


        한 방 안에서도 아랫목과 윗목의 열기의 온도는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윗목은 방바닥이 찰 뿐 아니라 방안의 공기도 차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윗목의 걸레는 얼어 있었습니다. 서양 의 집은 공기로 실내 온도를 데우기 때문에 앉으나 서나 기온차를 못 느낍니다. 그러나 아랫목은 따뜻한 온기에 선뜻 일어나게 하지 못하고 방구들에 붙잡아매는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랫목에서 태어나서 아랫목에서 가족들과 살을 부비며 살다가 끝내는 아랫목에서 삶을 마감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다투기고 하였습니다. 겨울의 밤에는 아랫목으로 모여서 화롯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서 먹으며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아랫목에는 저녁 늦게 오는 식구를 위하여 식지 말라고 밥주발을 보자기에 싸서 놓기도 하였습니다. 아랫목은 따뜻함과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의 자리였습니다.


      한 친구가 서울에 와서 고향 친구와 하숙을 하는데 겨울을 맞이한 봉천동 산밑의 집은 유난히 추웠다고 합니다. 한번은 한 밤중에 아랫목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교대로 연탄불을 갈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자신은 그냥 잤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싸늘하게 식은 방바닥은 이불 속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고 감기에 걸려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잠결에 누군가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낍니다. 아랫목은 식어가고 있음을 눈치를 채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서 연탄을 갈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자다가 일어나 연탄을 갈러나가는 일은 사명이면서 가족을 따뜻하게 하는 사랑도 깃들여 있음을 압니다. 아랫목을 식지 않게 하는 마음은 아랫목에 모이게 하고 몸도 마음도 훈훈하게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 아랫목은 어디 있을까요? 사랑으로 따뜻함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을 만드는 것은 성경(벧전1:22)에서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 모두 사랑으로 따뜻하게 하는 온돌의 아랫목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문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