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갑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빨리 끝나기를 옆에서 기다렸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울지마, 엄마 울지마하며 덩달아 울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예배당 건물의 바닥은 나무마루였기에 주일 아침 예배 시간에 떨어진 마른 눈물 자국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60년에 많은 사람들이 삶이 힘들었습니다. 없는 것이 많았고, 패배의식과 부정적인 생각이 팽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그 때 아무도 의지할 힘조차 없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흘린 눈물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담아드렸던 사랑이었습니다. 눈물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있었고 마음이 깨끗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며 감사해서 눈물을 흘렸고, 기도하며 그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이 마루를 적셨습니다.

   웃음과 눈물의 차이점이 있다면, 웃음은 크게 웃고 많이 웃어도 남아 있지 않고 소리만 날뿐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눈물은 감동이 있고 흘리는 눈물은 얼굴에 남아 있고 떨어진 눈물은 자국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김옥순 집사가 있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뒤에 딸만 셋을 키우려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집사님은 새벽 마다 와서 울었습니다. 때로는 크게 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는소리가 안 들려서 교회를 관리하는 사찰 집사님이 예배당에 들어 가보면 여전히 기도하고 있더랍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한 번 더 청소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린 집사님이 어느 날 몸빼 (일할 때 입는 헐렁한 고무줄바지)바지를 입고는 소금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일로 어린 세 자녀가 장성하여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얻어 훌륭한 사회인들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고 하나님은 그 집사님의 흘린 눈물 자국을 보았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성경 (25: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어느덧 눈물의 샘이 말라 있는 것 같습니다. 눈물을 흘린 흔적조차 없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딱딱해졌거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이 성도는 우는데 자신은 눈물이 나지 않아 물을 찍어 눈에 바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시다. 지나온 날들 속에 잘못한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하며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립시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기 위해 눈물을 흘립시다. 그 눈물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소망을 갖게 되었으면 합니다. -이문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