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초에는 집에 라디오 한 대 가지고 있는 것도 귀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라디오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길거리에는 전파상 가게 앞에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습니다. 행인들은 뉴스도 듣고 노래도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면 운전수가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아도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세상의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다니는 회사(라디오를 조립해서 수출하는 일본회사)에서 라디오 한대를 가져왔습니다. 아침에는 아차부인 재치부인을 들으며 하루의 일을 시작하였고 저녁에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는 재미에 라디오는 식구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것을 통하여 기쁨을 얻는 일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친구로부터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날마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재수하는 교회 형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을 때 그의 형은 공장에라도 다니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 때마다 피해서 우리 집에 놀러 왔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형을 볼 때마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염려했습니다. 그 해 12월에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고 찾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 다음해에 사관학교에 입학한 모습을 보았을 때 눈물이 나도록 기뻤습니다.

       삶에서 기쁨이 있으면 어렵고 힘들고 외로워도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기쁨의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근원(根源)은 원래 물줄기가 시작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origin, root, source 등의 단어가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의 외부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기 때문에 샘물이 솟아나는 물줄기가 있는 것처럼 기쁨의 줄기가 마음에서 밖으로 쏟아 나옵니다.

저희 모친이 장사를 하면서 힘들어도 우리들 앞에서 힘들고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힘든 것 같아도 너희를 보면 힘이 난다, 너희가 나의 기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우리가 기쁨의 원천이었고 우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기뻐했습니다. 한 권사님이 손녀를 보는데 힘들어 보였습니다. 말을 막 배우는 아이라 의사소통도 힘들고 어리기 때문에 잠시도 그 아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채워 달라고 울며 떼를 쓰기도 합니다. 옆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권사님이 하는 일이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힘들지만 손녀를 보면 기쁘다고 말합니다. 또한 손녀는 할머니를 보면서 웃고 울고 하는 것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아이는 서로 기쁨을 주는 근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약간 쌀쌀한 가을 날씨에 서로 가족이 없는 두 노인이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와 감자칩을 먹으며 나를 보자마다 피크닉을 나왔다고 합니다. 두 노인의 얼굴에서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기쁨은 형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기쁨을 뿜어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성경 (4: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빌립보 교회에게 한 말씀은 기쁨의 근원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소유에 있지 않고 주 안에서 얻는 기쁨은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게 됩니다. -이문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