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복도에 있는 풍금을 들어 교실로 옮겨 놓습니다. 선생님이 초록빛 바다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면 풍금 소리에 맞추어서 배우곤 했습니다. 음악시간이 끝나면 풍금 곁으로 달려가서 건반을 한번씩 눌러보며 즐거워 했습니다. 풍금은 피아노가 보급되기 이전에 학교 음악실의 반주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악기는 리드 오르간으로 발로 페달을 밟아 공기를 주입해야 소리가 나는 구조 때문에 풍금(風琴)이라는 한자어로 불렀습니다.

   우리 나라에 풍금이 들어온 것은 대략 1896년경 선교사에 의한 것으로 보는데 한국양악100년사라는 증언을 토대로 그것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30년전 만 해도 피아노가 없는 음악 시간에는 풍금이 대신 하였고 교회 역시 초기 선교사를 통해서 들어온 풍금은 교회 예배 때 찬송 악기로 사용하였습니다. 풍금은 피아노 보다 배우기가 쉬워서 교회에 나오면 너도 나도 풍금을 쳐보려고 순서를 기다리고는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황정숙 권사님은 20대에 시집와서 교회에 가보니 아무도 풍금을 반주하는 사람이 없어 손수 배워서 예배 때 반주를 하였다고 하며 풍금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한 지인은 처음 교회에 나갔는데 풍금 소리에 맞춘 찬송이 마음에 닿아서 그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이 오르간 반주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풍금을 통해서 음악을 배우고 바깥 세상을 보는 지식을 얻기도 했습니다.

    충북에 있는 한 시골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 유일한 풍금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풍금을 치면 옆에서 청년들은 찬송뿐만 아니라 건전한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함께 부르는 유일한 악기였습니다. 그 청년들은 1971년 전국 건전 노래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서 준비하여 전국에서 입상을 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그 당시 대한 뉴스에도 나와서 그 날의 노래의 장면과 수상의 장면을 보면서 함께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대전에 나가서 대학을 진학하게 되고 나중에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초등학교 선생님, 대학 교수까지 되었습니다. 풍금은 당시 그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새로 풍금을 구입한다고 하여 교회가 구입을 하게 된 것입니다.

    풍금과 인연은 군대에서 교회를 세우면서 동대문에 있는 D 교회에서 헌납을 하였습니다. 신우병들은 시간이 나든지 예배 전에 일찍 올라와서 풍금을 치며 서로 예배 때 반주하려고 해서 주일 예배와 수요 저녁 예배 때 반주자가 따로 있기도 했습니다. 풍금의 소리에는 따듯함이 있습니다. 소리가 끊이지 않고 누르고 있으면 일정하게 계속 나오며 떼면 소리가 멈추는 것이 소리가 은은하며 부드럽게 따뜻함이 있어 가슴으로 스며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화려하지 않았지만 풍금의 소리에서 찬송이 있었고 예수님의 따뜻함과 온유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믿음은 자랐습니다. 성경에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한 이 말씀은 따뜻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다른 해보다 조용해진 성탄 절기에 우리는 풍금 소리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위로를 받고 주님 앞에 나와 나의 주님이라고 다시 고백하며 진정으로 영광을 돌리는 축하의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문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