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라디오조차 귀한 시대에 저녁이 되어 대화가 없으면 더욱 외로움이 짙게 방안의 공기를 차갑게 했습니다."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면 외롭기 한이 없다"라는 노래를 초등학교 때 부르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훔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장사를 하러 지방에 가시면 사나흘이 지나서 오셨습니다. 이 외로움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 중에 경괘한 노래 "초록빛 바닷물에"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를 부르다 보면 마음과 방안이 따뜻해집니다. 입으로만 부른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최고의 가수가 아끼는 제자에게 노래를 부를 때 정직하게 부르라고 하였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부르는 것이 정직하게 부르는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수로서 슬픈 가사가 나오면 슬픈 얼굴을 하며 가사의 내용을 잘 전달하는 것이 정직한 것인가? 아니면 씩씩한 가사가 나오면 힘있게 부르는 것이 정직하게 부르는 것인가? 경쾌한 곡이라면 신나게 부르는 것이 정직한 노래인가? 그러나 부르는 사람이 마음은 힘든데 경쾌한 곡이라고 경쾌하게 부른다면 그것은 위선이 아닐까, 정직한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꾸밈이 없는 고백이며, 희망이며, 사랑일 것입니다.

  칠순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큰어머니에게 마이크를 주면서 노래를 시켰습니다. 한사코 반대를 하다가 무대에가 올의자에 앉아서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는 곡도 일률적으로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가사는 인생의 한이 서린 가사였습니다. 인생의 얼을 담은 노래였습니다. 모두들 그 노래를 듣고 숙연해졌습니다. 큰어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입니다. 촌부(村婦)로서 밭에서, 부엌에서 여자의 일생을 살아온 자신의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노래는 정직하게 불러야 합니다. 정말 잘 부르는 것은 곡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직하게 부르는 사람만이 잘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 드릴 때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의 가사가 좋아서 부르기도 하고, 곡이 좋아서 힘껏 부르기도 합니다. 순서에 있어서 부르기도 하고, 분위기에 젖어서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찬송은 불렀지만 감격과 감동이 없는 것이 왜 그럴까? 이유는 정직하게 부르지 않아서입니다. 정직하게 부르는 것은 마음에 담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르고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일용할 양식 가운데 맨 끝에 오늘의 찬송 321"날 대속하신 예수께"를 펼치고는 부르지 못하고 "나 구주 위해 살리라 내 기쁨 한량없으며 내 갈길 인도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라고 읽고 말았습니다. 정직하게 부르다 보면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나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성경(13: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고 한 말씀은 정직하게 찬양을 드리는 자가 받을 열매입니다. -이문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