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손편지를 많이 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30년 전에는 소식을 전하는데 전화보다는 비용이 저렴한 편지가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친구들로부터 오는 편지를 받는 즐거움은 미국 생활에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그렇게 한통한통 받은 편지가 큰 누런 두 봉투에 가득하게 채워져 책상 서랍에 보관되어 온지 꽤 여러 해가 되었다.

  지나온 글들을 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봉투채 버리려다 한통씩 꺼내 기억하며 읽어 내려간다 혼자 미소를 짓기도 하고 그때 그랬었구나 하며 친구들에게 온 편지, 어머니에게 온 편지, 형에게 온 편지, 읽을 때마다 지나온 일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십이 넘은 조카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한글을 배워서 손수 쓴 편지는 그림에 가까운 글씨로 전하는 순수한 사랑을 보는 것 같다, 끝내는 편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구겨 넣는다

 그러다 친구가 보낸 편지 한 장이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생활이 어려워서 해외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편지다. 힘들어하는 그 친구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은 채 유난히 큰눈이 잔영으로 다가왔다.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할머니와 함께 올라와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후에 대학은 연극 영화과를 다니며 배우의 꿈을 꾸다가 군에 입대하게 되고 제대한 후에는 복학을 하지 않고 k 음료회사에 취직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친구들로부터 들은 소식은 형편이 어려워 딸이 대학을 그만 두었고 안양 어느 지하 연립에서 살고 있어 찾아가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통의 편지가 내 손에 도착한 것이다.

  그 후에 그의 소식이 끊어졌고 수소문을 해도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가 35년 전에 편지를 이렇게 보내왔다. “친구, 우리의 나이가 이제 꺾어진 60이야 그때도 친구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겠지하고 보냈던 글이 지금은 육십이 넘었다. 그러나 그 때의 우정은 찾을 수가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세월이 흘러도 편지의 글은 남아 있고, 그 글은 세월이 흘러도 그 때를 말하고 있다. 만나면 이 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버리지 못하고 다시 서랍에 넣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지를 읽는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1: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라고 하였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이 편지를 읽으라고 하였다. 이 편지를 읽을 때 우리는 주 안에서 사는 기쁨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 잇다. 이 편지를 읽으면 더욱 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을 읽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문주 목사-